<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 워크숍 리뷰 / 최명애, 지구를위한디자인
<서기 22,021년, 인류세의 화석 증거를 보고합니다> & <공존을 위한 균형의 테이블>
서기 2만 2021년의 미래. 은하계연합탐사단은 태양계 조사 작업의 일환으로 지구 행성에 착륙해 행성 환경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한다. 한때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됐던 지구 행성의 대기와 물, 토양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회복되었다. 시추 작업을 실시하던 지질조사팀은 지하 220미터 지점에서 ‘인류세’로 보이는 지층을 발견했다. 지질학자들은 인류세 지층에서 다양한 화석을 수집해 돌아왔다.
<서기 22,021년, 인류세의 화석 증거를 보고합니다>
지구 행성에서 돌아온 지질학자들은 수집한 화석이 ‘인류세’의 증거가 되는 ‘지표 화석’임을 입증하고자 은하계연합층서학회에 참석했다. 그들은 세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 각자 가져온 화석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인류세 화석 등록 신청서’를 작성했다.
‘인류세 화석 등록 신청서’ 열두 장과 화석 실물. 각자 마음에 드는 화석을 골라 네 개씩 별 스티커를 붙였다.
첫 번째 질문: 당신이 수집해온 화석은 무엇인가?
먼저, 감염병과 관련된 화석으로 손 소독제(홀리카 홀리카), 백신 주사기, 마스크 MB필터의 폴리프로필렌이 나왔다. 전자 폐기물과 케이블, 휴대전화(삼성전자), 스마트 기기(LG전자), 메모리칩(삼성전자), 잉크젯 프린터(엡손) 등 전자기기도 많이 눈에 띄었다. 또한, 쉽게 썩지 않는 투명 페트병과 농업용 검정 비닐봉지, 미세입자로 남는 유리 조약돌, 자연물과 인공물이 섞인 생활 폐기물도 화석으로 제시되었다.
두 번째 질문: 이 화석은 인류세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나?
‘인류세 화석 등록 신청서’에 따르면, 생활 폐기물을 제외한 모든 화석이 인공물로 분류되었다. 지질학자들은 인공물 화석을 12개 항목(폭력성, 평화적, 기후변화 무관, 기후변화 유발, 인간에게 유익, 인간 외 존재에 유익, 즐거움, 끔찍함, 중독성, 영감을 불러 일으킴, 값비쌈, 값쌈)에서 1~9의 척도로 평가했다. 인공물 화석들은 ‘인간에게 유익함’ 항목에서 공통적으로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인간 외 존재에게는 매우 유익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기후변화와의 연관성도 대체로 높게 나타났다.
세 번째 질문: 왜 이 화석이 인류세의 가장 대표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가?
가장 많은 별 스티커를 받은 화석은 백신 주사기(8개), 전자 폐기물과 케이블(6개), 농업용 검정 비닐봉지(6개), 투명 페트병(5개)이었다.
‘백신 주사기’는 끊임없이 전염병이 창궐했던 인류세의 특징을 보여준다. 인류세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일상적으로 백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검정 비닐봉지’는 달라진 농업 방식을 알 수 있는 화석이다. 비닐의 발명 이후로 인류는 땅을 비닐로 덮어 경작했다. 디지털화된 사회에서 많은 폐전자기기가 발생했음을 보여주는 화석은 ‘전자 폐기물과 케이블’이다. 여러 물질이 섞여 있어 쉽게 분해되지 않았다. ‘페트병’은 오랫동안 썩지 않는 플라스틱 중 가장 널리, 많이 사용된 물건으로 보인다.
‘전자 폐기물과 케이블’ 화석, “디지털 세계를 가능하게 했다.”
<서기 22,021년, 인류세의 화석 증거를 보고합니다> 워크숍은 미래의 지질학자들이 인류세의 지표 화석을 보고하는 설정으로 이루어졌다. 2016년, 국제층서위원회(ICS) ‘인류세 워킹 그룹’(AWG)은 공식 지질연대에 인류세를 포함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결정의 조건이 되는, 지질연대를 구분하는 ‘황금못(Golden Spike)’과 인류세의 ‘지표 화석’을 탐색 중이다.
최명애 교수는 마무리 강연에서 ‘희망’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인류학자 이븐 컬크시는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피해 지역에 풀어놓은 염소 세 마리가 일으킨 긍정적인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재난 이후에도 삶은 다른 모습으로 지속되며, 희망 역시 작은 반짝임이나 물 위에 뜬 기름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고 썼다.
이번 워크숍이 ‘은하계연합탐사단’ 지질학자 역할을 맡아준 참여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다른 형태의 희망과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기를 바란다.
<서기 22,021년, 인류세의 화석 증거를 보고합니다> 워크숍 현장
<공존을 위한 균형의 테이블>
서기 2021년, 돌고래, 사람, 새가 서로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으려 한다. 돌고래는 바다, 사람은 땅, 새는 하늘을 의미한다. 그린 디자인 개념을 환경 교육에 접목한 ‘지구를위한디자인’이 제작한 보드게임을 함께 하며 공존과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눴다.
지구를위한디자인의 세가지 가치 (생태적 감수성의 회복, 요람에서 요람까지, 다음 세대) 에 대해 설명하는 김우진 디자이너.
첫째날: “Everything is One”
테이블 위에 올려진 첫 번째 보드 게임은 “생태계 먹이 그물 놀이” 이다. 지구를위한디자인이 손수 제작한 이 보드 게임은 어린시절부터 버리지 못하고 간직했던 옷들을 동그란 이불로 만들며 시작됐다. 테이블 위에 놓인 동그란 놀이판을 실타래로 연결하며, 우리는 수평의 생태계를 발견한다. 항상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피라미드 형태의 수직적 구조는 동그란 놀이판 위에서 그물처럼 연결됐다.
“생태계 그물 놀이”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있다.
“KEYSTONE”. 회색늑대를 중복해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많은 시도 끝에 성공했다.
이어 각각의 테이블에서는 하고픈 이야기를 담은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했다. 공장식 축산업과 우리의 삶, 대학교의 길고양이, 결국 흙으로 돌아갈 무수한 쓰레기까지 무관할 것만 같았던 우리 사회의 구조도 생태계의 먹이사슬과 다르지 않았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보드게임 “KEYSTONE” 은 핵심종과 생물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적은 개체로도 생태계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종’과 하나의 생태계에 얼마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지를 의미하는 ‘생물 다양성’은 자연이 만들어낸 질서를 보다 깊게 관찰하는 수단이 된다.
총 42개의 타일로 구성된 ‘KEYSTONE’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지 않는다. 다만, 참여자들은 42개의 타일을 모두 사용해서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을 공동의 목표로 삼는다. 게임의 규칙에 따라 완성된 생태계는 하나의 색깔, 하나의 생물군으로 독점되지 않는다.
둘째날: “Time to say goodbye”
바다 한가운데 새로운 섬들이 등장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로 만들어진 섬이다. 보드게임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해양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쓰레기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가 생산하는 쓰레기들을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분리 배출할 수 있을까? 이미 바다로 흘러간 쓰레기들은 어떻게 될까? 한 쌍의 쓰레기 카드에는 각각 분해기간, 해양 생물에게 미치는 위험도를 고려한 별의 개수가 정해져 있다. 별의 개수가 많을수록 그것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위험도도 높아진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 선택의 결과는 어땠을까?
“플라스틱 아일랜드”
“돌고래를 바다로" 핫핑크돌핀스와 어라우드랩이 함께 제작했다.
제주 남방 큰 돌고래에게 닥친 위기를 담은 수족관 탈출 게임 “돌고래를 바다로”는 불법 포획되었다가 다시 바다로 방류된 돌고래, 제돌이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 날 김우진 디자이너는 돌고래쇼, 샥스핀 문제를 소개하며, 방류된 일곱 마리의 돌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TV 예능은 물론, 주로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고 있는 돌고래쇼와 동물원의 문제를 지적하며 과연 돌고래와의 악수가 자연스러운 활동일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이 남긴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두 워크숍의 리뷰와 함께, 내일을 끌어다 오늘을 사는 삶에서 벗어나 온전한 오늘이 되기를 고민하는 서기 2021년, 서울과 광주의 소식을 전한다.
(글: 제로의 예술 최윤정, 박태인 사진: 현준영, 홍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