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시티> 투발루에서 시작한, 투발루로 떠나는 항해 / 강현석, 강주현
제로의 예술 두 번째 장기 프로젝트 <섬:시티>가 마무리됐다. 남태평양의 낯선 섬나라 투발루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나의 방과 우리의 공동체까지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워크숍의 시작인 <투발루 프로젝트>를 함께 만든 강현석 건축가와 강주현 디자이너에게 후일담을 들어보았다
16명의 참여자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취합해 만들어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그려진 건축드로잉. 다시 투발루를 향해 느리게 항해하고 있다. 워크숍을 통해 확장된 투발루 프로젝트의 건축드로잉과 시나리오는 8월 제로의 예술 페스티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드로잉 강현석)
1. 처음 <투발루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계기와 <섬:시티>라는 이름으로 워크숍을 기획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강현석: 건축학 석사를 공부하던 중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투발루의 기사를 우연히 읽고 관심을 두게 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는 항상 현실과 미래 그 사이에서 희미하게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투발루는 그 경계에서 또렷이 실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2011년 직접 현장 리서치를 통해 보게 된 투발루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외적 요인뿐만 아니라 고립된 섬나라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내적 요인들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 섬의 모습에서 현대의 다른 도시 국가들의 보이지 않는 위기가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투발루가 대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를 국제 사회의 실천적 협력을 촉구하는 목소리로 전달하고, 그 과정 속에서 21세기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자 <투발루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번 워크숍은 <투발루 프로젝트>의 연장선에 있다. 이름에서도 ‘섬’과 ‘도시’를 병치하고자 하였다.
강주현: <투발루 프로젝트>는 강현석 건축가가 리서치한 투발루 섬에 대한 건축 시나리오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웹으로 발행한 디자인 작업이다. TVPR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세 권의 책(Fact Book, Photo Book, Scenario Book)을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게 만들었고, 책에 대한 의견을 join@tvpr.tv로 받고 있다. <섬: 시티> 워크숍은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인 투발루의 모습처럼 참여자들도 각각 자신만의 장소에서 접속해 만나는 모습이 마치 ‘섬’같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로 ’Sum’은 ‘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각 섬에서 참여하는 참여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군집을 이룬다는 생각으로 <섬: 시티>란 워크숍을 기획했다.
2. 이번 <섬:시티> 워크숍의 참여자들도 서로 다른 배경과 관심사를 통해 공동체와 환경에 관련된 이슈들을 다뤘습니다. <투발루 프로젝트>의 연장에서 이번 워크숍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강현석: 워크숍을 기획하면서 프로젝트의 제작 과정을 참여자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참여자들이 투발루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복잡성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서 프로젝트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확장하는 아카이브’에 소개된 9개의 개별 카테고리 중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하나의 주제를 정한 후 참여자들이 리서치를 통해 나온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그 결과물은 ‘대안적 투발루 시나리오’를 위한 리소스가 됐다. 이런 과정에서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는 참여자들 덕분에 ‘확장하는 아카이브’의 기존 카테고리에 미래 세대를 다루는 ‘교육’ 카테고리가 더해진 것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참여자들이 매시간 적극적으로 보석 같은 생각들을 공유해 엮은 건축 시나리오의 결과물로 한층 더 확장된 <투발루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었다.
강주현: <투발루 프로젝트>의 연장선이 될 수 있도록 많이 고민했다. 매주 참여자들의 결과물을 기록하며 투발루와 연결된 이야기를 모으는 방식으로 다음 과제를 조금씩 수정하며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참여자들의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시나리오 북’에 추가되며 책의 내용이 풍성해졌다. 각자 경험과 관심사가 달라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나리오 북에 교육(education)분야가 추가됐다. 초등학교 교사인 참여자는 지속가능한 예술, 환경, 교육에 관심을 두고 워크숍에 참여했다. 투발루의 공교육 체계와 지속가능한 교육과 친환경 학교 건축에 대한 예시를 공유했다 (원치수- 환경에 따라 떠다닐 수 있는 학교 건물과 교육 시스템).
3. <섬:시티> 워크숍은 해수면 상승에 직면한 섬 투발루에서 시작해 한국에 있는 나의 공간(‘나의 섬’)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우리의 공간(‘섬:공동체’)으로 확장하는 과정을 거친 후 다시 투발루로 돌아가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낯선 나라인 투발루의 문제를 다루면서 나와 우리의 공간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강주현: 투발루는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아이디어도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것 같은 우려가 있었다. 투발루의 위기를 참여자들이 실생활에서 겪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더 실질적인, 실생활에 가까운 아이디어를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우리의 공간을 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강현석: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남태평양의 작은 섬과 7000km 떨어진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각각의 참여자들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장소에서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보기를 권하고 있다. 워크숍 참여자들로 이룬 가상 공동체를 가정하여 각기 다른 장소의 개념과 스케일을 넘나들며 다양한 사고의 투영 과정을 함께 경험해 보고자 했다. 21세기의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은 함께 지향하는 가치 안에서 각자의 방식에 따라 행동하고 이를 공유하는 형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워크숍이 이러한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앞 사유지에서 양을 키우는 모습을 보고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를 상상한 드로잉. 경제적 건물인 아파트가 동물 농장으로 쓰일 면적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을지, 대지가 아닌 아파트의 공용 공간에서의 동물들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의견을 나눴다. (그림 이동원 / 디자인 강주현)
4. 세 가지 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연결 고리, 공통적인 문제의식이나 접근 방식을 발견하셨나요? 참여자들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주현: 대부분 참여자의 주요 키워드는 ‘지속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에너지 생산이나 새로운 수입원을 위한 이야기를 할 때도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민이 많았다. 쓰레기를 재활용해 에코 브릭을 만들거나 업사이클링으로 로컬 브랜드를 만드는 아이디어들이 눈에 띄었다. 이후 자신의 공간이나 공동체로 옮겨가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텃밭’의 형태로 구체화 되는 것을 발견했다.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텃밭’이 ‘지속가능성’의 중요한 조건으로 여겨진 것이다.
강현석: 각 아이디어는 동일 카테고리 이슈에 속한 또 다른 아이디어와 결합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카테고리와 연결되기도 했다. 에코 브릭을 예로 들자면 ‘쓰레기 관리’ 카테고리에 들어가지만 건설 자재를 아웃풋으로 내면서 ‘영토의 유지’에 속한 해빈 조성과 ‘교육’의 지속가능한 학교의 건설 등과 연결이 된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자연스럽게 아이디어 간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의 생활 방식, 직업, 관심사 등에 따라 설정된 여러 아이디어가 공유되고 연결될 때, 상당히 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사고의 장이 형성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왼쪽부터 유재인-빛과 소금, 김영주-에코브릭) 쓰레기 관리 부분에 추가된 참여자들의 아이디어. 담수화 후 발생한 소금을 이용하여 새로운 수입원을 만드는 아이디어와 에코브릭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새로운 건축자재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추가했다.
5. 여섯 번의 워크숍에서 모인 개별적인 아이디어들이 투발루에서 ‘시나리오’로 펼쳐지는 인상적인 순간이었어요. ‘시나리오’라는 표현의 선택과 이 ‘시나리오’를 만드신 과정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강현석: 다시 투발루로 향해 나아가 그곳에 정박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인식과 관계의 사고 순환 루프(loop)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6주간의 워크숍에서 우리가 공유한 사고와 대화의 과정은 환경위기 혹은 지속가능성 논의의 진보적인 측면에서 때때로 무기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해결을 위해 개인이 내는 작은 목소리를 연결한 움직임들이 더 강한 울림을 내고, 다른 이들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연대의 실천으로서 ‘시나리오’와 건축적 드로잉을 생각했다.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나온 다른 참여자들의 아이디어를 착안해 태양광 설비, 수직 농업, 동물 농장 관리, 아카이빙 등의 역할을 분담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마을 공동체를 만들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다양한 기술들을 구현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로서 작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스템들을 제안하고 마을 구성하는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그림 이동민 / 디자인 강주현)
6. <투발루 프로젝트>가 미래를 위한 아이디어들을 수집하는 것이라면, 이 청사진이 모여 실제 투발루를 바꾸는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은 언제 올까요?
강주현: 과연 올 수 있을까? 모르겠다.
강현석: 역으로 <투발루 프로젝트>를 접한 독자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의 사고와 태도의 변화가 생길 때, 물리적 거리를 초월한 투발루에도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7.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강주현: <투발루 프로젝트>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욕심으로는 <투발루 프로젝트> 전체 디자인을 더 다듬고 싶고 워크숍으로 추가된 내용을 따로 책으로 만들고 싶다.
강현석: 기회가 된다면 <투발루 프로젝트>의 큰 사이즈의 드로잉들을 특징을 살려 전시를 해보고 싶다. ‘서울과 자연’이라는 주제로 <투발루 프로젝트>와 비슷한 형식을 가진 리서치 기반의 시나리오 책을 시작해 볼 예정이다.
(정리: 제로의 예술 이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