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Makes Zero
vol.3

<10대 기술 말하기>의 남은 말하기 / 고아침, 곽소아, 송수연, 최빛나, 최승준

1월 7일 <유추 – 닮은꼴 찾고 연결하기>로 시작을 알린 <10대 기술 말하기> 프로그램이 2월 14일 <셀카의 기술>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다. 설 연휴가 끝난 15일, 제로의 예술 기획팀이 <10대 기술 말하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예술가/전문가(고아침, 곽소아, 송수연, 최빛나, 최승준)들을 만나 그동안의 소회를 들었다.

제로의 예술 전유진(이하 유진): 가장 최근에 워크숍이 끝난 아침님부터 시작해볼까요?

스파크 AR Spark AR (페이스북) , 렌즈 스튜디오 Lens Studio (스냅챗), 크리에이터즈 스튜디오 Creators Studio (스노우)의 첫 화면. 각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기 다른 모델들이 눈에 들어온다. 셀카와 보정 필터가 보여주는 정치성은 무엇일까. (<셀카의 기술>, 고아침 진행, 전국 고등학생 대상)

아침: 저는 셀카를 테마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제가 듣는 사람이라는 전제로 관찰 위주의 문화 기술지를 작성해보도록 했어요. 참여자가 셀카를 찍으며 주로 사용하는 툴을 직접 관찰하고, 자기 언어로 서술하도록 했죠. 이를 바탕으로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경험 자체를 목표로 했는데 의도한 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처음부터 제가 미리 생각하고 있던 이슈 쪽으로 대화를 끌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셀카라는 기술이 시각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젠더나 시선의 정치로 비롯된 권력의 문제들, 안면인식기술로 생기는 인종이나 감시 같은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셀카의 기술>에서의 기술은 재주라는 뜻보다 과학기술과 기록, 묘사를 뜻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사용된다. 셀카에 담긴 사회적 맥락과 과학기술, 보정을 위한 필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문화 인류학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셀카를 찍고 올리는 전반의 과정과 필터의 사용 및 제작 과정을 살펴보며 문화 기술지를 작성한다. 자신의 일상에서 익숙한 셀카, 필터, 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낯설게 만드는 질문을 던지는 관찰자가 된다.

유진: 참 고민이 많이 되는 부분이죠. 다른 작가님들과도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즐겨하는 행위를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게 공격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지켜보면서 셀카의 기술의 ‘기술’이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문화 인류학적인 관점에서의 ‘기술’이라서 참여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고요. 셀카를 찍을 때 어떤 앱을 썼고, 어디서 찍었고, 이런 내용을 건조하게 기록해보는 것이 참여자들에게도 분명 낯선 경험이었던 것 같고, 보면서 흥미로웠어요. 아침님이 말씀하신 대로 젠더이슈와 관련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봤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렇게 기술함으로써 평소와 다르게 보았던 것 같기는 해요.



<인공지능으로 ‘나’를 만나다>에서는 기존 알고리즘을 수정하거나 만들지 않고 창작의 도구로 인공지능을 사용한다. 참여자들은 ‘나’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여행을 떠나며 ‘나’와 기술, 예술, 자아의 관계와 거리를 가늠해보는 과정을 각자의 여행일지에 기록하고 공유한다. 인공지능과 함께할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인공지능으로 ‘나’를 만나다> 곽소아 진행, 전국 중고등학생 대상)

“사람은 자아, 네모는 예술의 고통으로 표현했어요. 기술과 예술 속의 자아가 다르기 때문에 2개에요. 이 지도는 비어 있는 네모 박스에 도착하는 게 최종 목적이에요. 예술의 고통을 진정으로 느끼고 깨달아야 끝낼 수 있어요. 도넛 모양으로 연결된 길은 기술을 표현했어요. 뚫려 있는 구멍을 조심해 가지 않으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 (참여자가 그린 ‘나’를 중심으로 ‘기술, 예술, 자아’의 관계도 Google AutoDraw)

소아: 이전에 제가 진행했던 교육 활동은 명확한 성취 목표가 있었는데, 이번엔 그와 다른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이번 워크숍은 ‘나’를 만나는 여행이라는 컨셉을 잡았어요.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각 참여자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에 따라 활동을 정하고 슬라이드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져오며 진행했어요. 중간중간 기술적인 원리나 윤리적인 이슈에 관한 질문들도 있었죠. 워크숍 중에는 가벼운 질문 형식으로 화두를 건네는 정도로 다루고 끝난 후에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자료들과 혼자서도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도록 여러 데모들도 정리해서 공유해 주었어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위해 첫 시간엔 자신만의 여권 사진을 ‘AI Gahaku’를 이용해 만들었다. 초상화로 그려진 낯선 자신의 모습에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서양인처럼 묘사된 모습에 의문을 제시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소아: 제가 이전에 연구하던 컴퓨터 교육학과 발달 심리학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워크숍을 통해 이루어진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10대들이 공교육에서 만나게 될 인공지능이 어떤 모습일지 미리 고민해보는 경험이라는 생각에 이번 워크숍을 더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참여자들이 워크숍이 종료되더라도 나를 위해 떠나는 여행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기술을 저글링하기>는 저글러의 ‘저글링’과 ‘기계학습’의 공통점에서 출발한다. 규칙과 패턴을 찾고 연습을 반복하면서 나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공지능은 기계학습의 과정에 사용된 데이터를 근거로 확률을 계산한다. 그렇다면 A와 B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이 같은 사진을 다르게 분석하는 이유는 뭘까?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기술을 저글링하기>, 송수연 진행, 전국 중학생 대상, 그림: 송수연)

수연: <기술을 저글링하기>에는 워크숍이 다루는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온 참여자도 있었고, 호기심 혹은 저글링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온 참여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할 활동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저글링 공을 미리 보내주기도 했지요.

워크숍에서는 저글링을 출발점으로 삼아 저글링의 패턴과 공식, 저글링 문화의 확산과 프로그래머들의 역할을 먼저 소개했어요. 그리고 ‘퀵드로우’를 통해 데이터가 어떻게 모이고, 모인 데이터로 어떻게 학습이 계속되는지를 알아봤어요. 오픈소스 데이터 세트로 가능해진 작업을 더 살펴보고, 데이터 세트에서 나타나는 편향성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죠.

‘퀵드로우’는 드로잉 데이터 세트를 공개한다. ‘개’ 데이터 세트에서는 사람들이 개를 그리는 다양한 방식을 볼 수 있다. 정확도를 떨어뜨리는 노이즈는 사용자가 골라낼 수 있도록 했다. ‘퀵드로우’의 데이터 세트에도 편향성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수연: 마무리 단계에서는 ‘티처블 머신’과 이미지 데이터를 이용해 인식이 잘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의 차이를 발견해보는 실습을 진행했어요. 각자 미래의 인공지능 모델을 구상해보는 과제에서는 나를 중심에 두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타자 혹은 비인간과 환경을 향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보자는 조건이 있었죠. 워크숍 중에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생각하게 했어요.

각자의 방에서 웹캠으로 찍은 사진들, 강아지와 고양이 데이터 세트로 기계학습 모델을 만들었다. 이어진 과제에서 참여자들은, 제대로 진단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 우울한 사람들, 집안일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 공정한 재판을 원하는 사람들, 알약을 구별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인공지능을 상상했다.

유진: 인공지능 모델을 만드는 실습에서 왜 굳이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위한다는 조건을 달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수연: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인공지능 같은, 너무 뻔한 자기중심의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어요. 이런 조건을 달면 생각을 더 확장할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유진: 그렇게 의도적으로 심어두신 장치가 흥미로웠어요. 편향성이라는 개념을 처음부터 설명하고 시작하시기도 했죠. 특히 시기적으로 ‘이루다’가 논란이 되었던 터라, 서비스의 주 이용자층인 10대 참여자들과 그런 이야기를 원활하게 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했었고요.

수연: 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알고리즘, 데이터 같은 주제를 다룰 때, 편향성과 차별, 윤리적 문제를 떼놓을 수 없기 때문에 같이 이야기할 거라고 명확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데이터의 속성은 비물질적이면서 물질적이다. 데이터가 모이는 인프라인 ‘데이터 센터’는 많은 열을 방출하며 상당한 전력을 소비하고 있다. 이미 생태적 환경의 일부가 된 데이터 센터에서는 어떤 생물이 살아가게 될까? <데이터 인섹타!>에서는 SF적 상상을 담는 ‘픽션 디자인’의 접근법을 통해 기술적 환경의 근미래를 우울하지만 유머러스하게 풀어보았다. (<데이터 인섹타!>, 최빛나 진행, 전국 고등학생 대상)

빛나: <데이터 인섹타!>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참여자들이 왔고요. 저는 보통 생각의 뼈대를 세운다는 관점으로 교육적인 활동에 접근해요. 그래서 우리가 산업 사회와 비교해 어떤 시대, 어떤 사회사적 흐름 안에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어요.

기술적인 환경을 이야기할 때 중요했던 대상이 데이터 센터였어요. 그리고 하나의 사물이나 캐릭터로 세계상 전체를 은유하는 방법론인 픽션 디자인 등을 살펴보면서 레이어를 쌓았어요. 스트리트 뷰로 네이버와 구글의 데이터 센터에 접속해보기도 하고요.


빛나: 저는 기술이 툴로 환원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툴을 배워보는 시간을 굳이 배치하는 편이에요. 이번에는 웹 기반의 3D 모델링 툴인 ‘SculptGL’을 사용했어요. 툴을 이용해 구체적인 하나의 생물을 디자인하고 그 생물이 사는 세계의 상을 상상해보도록 접근했어요. 배경이 되는 데이터 센터의 특성과 환경, 에너지 소모량 등을 리서치해 ‘생각도움카드’를 같이 작성했고요. ‘버그’와 ‘디버깅’ 같은 용어가 보여주듯, 컴퓨터의 역사와 중첩되면서 유전적으로 다양한 변이체가 있는 곤충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참여자들은 반딧불처럼 빛을 내는 곤충(위), 다리와 지느러미가 있는 해충(아래) 등을 디자인했다.

빛나: 저는 10대 참여자들이 이전에 비슷한 워크숍을 진행했던 성인 참여자들과 전체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메타포를 이해하거나 은유적인 방식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접근에도 부족함이 있을 테고, 10대들에게도 메타포나 은유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문화예술 감상 경험이 전반적으로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을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교육을 포함해서 기술을 너무 도구 환원적으로, 일자리 중심적으로 다루지 않는 용기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진: 말씀하신 부분이 10대 참여자들에게 더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처음 배우는 툴을 다루면서 개념적인 활동을 동시에 하기에 시간적인 여유가 더 필요했나 싶기도 해요. 워크숍 리뷰를 보면 참여자들이 데이터 센터가 보여주는 데이터의 속성이나 픽션 디자인의 방법론 등을 인상적으로 느낀 것 같아요.



‘곱하면 더 좋을 정보’는 어떤 정보일까?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우리 뇌의 방식을 바꾸는 지금,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연결하고, 적극적인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경로를 찾아가는 연습은 새로운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이 되지 않을까? <유추 – 닮은꼴 찾고 연결하기>에서는 그러한 서로 간의 연결과 탐색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추 - 닮은꼴 찾고 연결하기>, 최승준 진행, 전국 중학생 대상)

승준: <유추 – 닮은꼴 찾고 연결하기>에서는 ‘한장공유’를 많이 했어요. 새로운 활동이 아니라 그동안 제가 다른 워크숍에서도 해왔던 활동이라는 아쉬움이 남아요. 워크숍 후에 많은 참여자가 ‘한장공유’를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꼽았어요. ‘한장공유’ 외에는 제 강의가 많아서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여자들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기도 했고, 과제를 강요하지 않고 참여 위주로 진행할 때 워크숍이 제대로 흘러갈지 확신이 없기도 했어요.

화면의 네 구석에는 참여자들의 이름이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본 흥미로운 키워드, 내가 찾은 노션 노하우, 인공지능과 코딩 교육에 관한 생각, 내 뇌를 위해 하고 싶은 것 등의 주제에 관해 각자 단어나 짧은 글을 적는다. 서로 닮은 것이 보이면 자유롭게 연결한다. 구글 잼보드로 진행한 ‘한장공유’ 활동이다. 구글 슬라이드로는 간단한 ‘저자워크숍’ 실습이 이루어졌다. 함께 정보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주제를 각자 적고, 다른 참여자의 슬라이드에 자신의 정보를 추가한다. 이를 토대로 정보를 더하고 곱하면 각자의 노션 페이지가 더 풍부해진다.

승준: 최근 ‘클럽하우스’ 경험을 생각해보면 일단 다들 보이지 않는 상태로 어둡게 있고요. 모더레이터가 자기 이야기만 하지 않고 진행을 잘해야 재미가 있더라고요. 반말로 진행하는 방도 있었어요. 10대 참여자들과 줌 워크숍을 할 때 그런 메커니즘을 활용했으면 어땠을까요? 카메라를 끄고 다 같이 말로만, 그것도 반말로 진행했다면 듣기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한편으로는 잘 안됐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유진: 저희도 10대가 온라인 환경에서 어떤 것을 기대하고 어떤 것을 수행해왔는지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줌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으로 자리 잡은 것 같지 않더라고요. 주로 수업으로 활용하는 플랫폼이고, 나서서 말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줌에서 카메라를 켜는 것도 그랬어요. 카메라를 켜고 싶은 참여자가 있어도 한두 명씩 끄기 시작하면 혼자만 켜놓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어요.

동시에 온라인 환경에서 강의나 워크숍을 할 때, 드러나는 개개인의 환경이나 문제를 고려하면서 진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웹 기반으로 뭔가를 만들어 보면, 각자가 가진 디바이스의 호환성이나 성능, 다운로드하는 인터넷 속도의 차이까지도 알게 되는 거죠.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제로의 예술과 참여 예술가/전문가들은 10대 참여자와 기술 사이의 거리를 계속해서 되뇌어 보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못다 한 ‘말하기’를 어떤 형태로 이어갈 수 있을지 이야기하며 대담을 마무리했다. 8월의 페스티벌에서 어떤 새로운 <10대 기술 말하기>가 펼쳐질지 기대하며 회고를 마친다.

(정리: 제로의 예술 이목화,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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