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Makes Zero
vol.3

예술육아소셜클럽 / 김다은, 이경희


1. 예술육아소셜클럽(이하 예육소)의 2020년 회고와 2021년 활동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총 8번의 모임이 어떤 목표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그리고 두 분의 소회나 기대도 덧붙여주세요.

(다은) 예육소가 어떤 모임이 될지 처음에는 감이 오지 않았다. 처음 4회를 진행하며 중점을 둔 것은 대화 안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동시에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3~4주에 한번 진행되는 정기모임과 더불어 1~2주에 한번, ‘육아 퇴근’한 이들이 줌에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 일을 하거나 독서를 하는 비정기모임을 가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경희) 정기모임을 저희 둘의 편의상 작년 4회, 올해 4회로 나누었을 때, 전반은 ‘나를 알기 위해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후반은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그것이 나 이외의 다른 이들, 더 넓게는 사회시스템에 던지는 목소리가 될 수 있도록 ‘매니페스토’를 따로 또 같이 만드는 중이다. 수많은 예술지원정책 중 육아인을 상정한 것이 있는지 살피고, 실제로 예술 활동에서 육아인이 겪는 어려움이나 한계, 그들에게 필요한 것, 현황을 수집해보려 한다.

처음엔 용감하게 ‘작업하는 공간을 셰어하며, 아이도 함께 키우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보자’고 매우 이상적인 포부를 던졌다. 해외에 선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모집 소개글에도 공동육아 레지던시를 지향한다는 이야기를 넣었는데, 하나하나 짚어보니 우리가 생각한 레지던시는 작업과 보육을 위한 물리적인 공간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했다. (잠시 좌절)

하지만 짬짬이 온·오프로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생각과 상상을 하는 시간만으로도 좋았다. 어려운 상황을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모인 대화방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모종의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꼈다.


2. 처음 모임을 꾸리면서 생각했던 것과 실제 진행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을까요? 두 분의 생각이나 참여자들, 모임의 변화, 혹은 진행하면서 예상과 다르게 어려웠던 점,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깨달음 등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다은) 예상은 했지만, 각자가 처한 개인 및 가정 내 상황이 달랐다. 두 번째 만남에 앞서 실제로 자신이 어떻게 하루 24시간을 쓰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나의 하루 일과표’를 그려오기로 했는데 육아, 예술, 자유시간, 취침 시간 등의 비중과 시간대가 천차만별이었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 육아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그로 인한 심리적, 물리적 여유 역시 제각각이었다. 각기 다른 상황 안에서 생각을 모으고, 공동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효율적인 방식을 고려해야 했다.


3. 예육소는 제로의 예술 안에서 가장 호흡이 긴 워크숍입니다. 거의 매주 ‘잉여로운 이 밤의 끝을 잡고’ 비대면 모임이 열리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다 보니 참여자들 사이에 친밀도와 유대감이 꾸준하게 쌓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커뮤니티가 어떤 방식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요? 각기 다른 상황의 예술가/엄마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따로 또 같이’의 미덕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다은) 각자의 일과를 살펴보니 그나마 도출된 공통분모는 아이를 재운 뒤 주어지는 밤시간이었다. 오롯이 취미생활, 쉼, 일 등으로 채울 수 있는 짧지만 소중한 몇 시간이었다. 그러나 하루종일 육아를 하고 일상에 치이다 보면 막상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다수의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공동으로 이 시간을 점유하되 개개인이 온전하게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모임을 고안해보았다. 밤 10시, 줌 회의 창이 열리고 그때부터 각자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접속해 화상으로 간단한 인사와 안부 정도 나눈 뒤 딴짓하지 않고, 책을 읽거나 밀린 업무를 보는 식으로 말이다. 이 비대면/비정기 모임은 지난가을부터 총 12회에 걸쳐 현재도 진행 중이다. 때로는 예술 및 육아 정보가 오가기도 하고, 고민 상담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등 그때그때 접속한 멤버들끼리 친밀감을 쌓으며 예육소를 느리지만 단단한 모임으로 만들어나가는데 일조하는 활동이다.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도모하려는 목적보다 각기 다른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체력을 내어 모인다는 것 자체에 더 의미를 둔다.


4. 경력단절과 관련해서 참여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뭐라고 느끼시나요? 모임에서 가장 많이 공감대를 얻는 이야기들은 주로 무엇인가요?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거나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경희) 처음엔 육아에 발이 묶여 전시는커녕 작은 작업 하나도 하지 못하고 갈수록 예술가로서의 입지가 작아지는 육아인을 위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집중해보자 했는데, 이야기나눌수록 엄마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떼어놓을 수 없고 둘 다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출산 이전의 사회적 정체성을 되찾았다 해도, 육아에 영향을 미친다 느낀다면, 결국 사회 활동도 불안할 것이다. 막연히 ‘다시 작업하고 싶어’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지금의 나는 어떤데? 다른 이들은 어떤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중장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질문하며 엄마와 작가 모두의 욕망을 구체화하고, 동시에 균형도 맞추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고민한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

모집단계에서 엄마 아빠를 비롯해 육아를 하는 모두에게 참여를 열어놓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엄마들만 지원했다. ‘예술육아소셜클럽’이란 프로그램명을 보고 ‘나도 지원해볼까?’ 생각했던 아빠 예술가는 과연 있었을까. 또 이 프로그램이 남성에게도 열려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는 얼마나 될까. 여전히 ‘육아’라는 말은 여성의 노동으로 연상되는 현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남성의 육아 참여율이 실질적으로 높아져야 그다음 대화가 가능하겠지만.



5. 부모로서의 경험은 예술가(의 작업, 기획, 생활 등)를 어떻게 바꿀까요? 두 분의 경험을 나누어 주셔도 좋겠습니다. 아이를 기르는 일과 예술가로서의 일을 병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경희) 연결감과 존중감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일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과의 관계와 과정을 더 섬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아이와 나, 남편과 나, 나와 나, 나와 남편과 아이의 관계의 결 하나하나가 매우 미묘하고 정교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걸 느낀다. 물론 함께 사는 고양이, 강아지와의 관계를 포함해서 말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깊은 (인간) 관계를 가져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여서 힘든 적도 많았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관계의 갈등이 평행선에서 만날 줄 모르면 포기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문제는 좀 다르다. 아이와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 그전에 남편과의 관계를, 또 더 그전에 나와 나의 관계를 되새김하며 각자의 상태를 이해하고 존중하려 노력한다. 어쨌든 이전보다 미세한 결에 촉각을 세우고 스스로와 나 이외의 가족을 돌보고 또 돌봄을 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것도 때론 부작용이 있어서 너무 힘들 땐 다른 한편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 볼 필요가 있다. 당장 작업을 할 순 없어도 자주 집에서 나와 다양한 사람과 사회를 보는 건 중요한 것 같다. 단순하게 환기도 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 고민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모임이 주는 순기능이 있다.


6. ‘예술가/부모’는 ‘예술가’를 지원하는 정책과 ‘양육자’를 지원하는 정책 사이에서 소외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판데믹을 겪는 예술가/부모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회적인 움직임 혹은 정책이 있을까요? 없다면 어떤 사회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할까요?

(경희)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 운동이 수면 위로 올라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걸 반기는 이들 중에는 부모, 특히 엄마도 있다. 결혼과 출산 전에는 미혼의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냈지만, 엄마가 되고 간단한 외출에도 유아차를 밀고 다녀보니 계단뿐이어서, 턱이 너무 높아서, 노키즈여서 들어가기 어려운 가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편적으로는 화가 났지만 결국 내가 소수자의 삶에 너무 무심하고 무지했다는 반성이 컸다. 출산 전에도 문제점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당장 나의 문제가 아닌 것에는 어떻게 바꾸고자 하는 실천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의 공동기획을 제안받았을 때도 내가 해온 커리어를 바탕으로 참여자와 대화하고 또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는 기대와 약간의 자신감, 그리고 그게 아무리 작더라도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기꺼이 응했다. 최근 양육자(특히 엄마들)의 모임이 단순히 온라인 커뮤니티를 너머, 사회적 기업, (비)정기간행물 출간, 공동육아시설 등 다양한 플랫폼과 형태를 통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동기획자 김다은 씨의 책 <자아, 예술가, 엄마>가 4쇄를 찍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전엔 여성 작가가 ‘엄마됨(motherhood)’의 경험을 작품에 드러내는 걸 오히려 터부시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말하고 싶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걸 반증하는 현상이었다고 생각한다.


7. 창작지원에서 인정하고 요구하는 ‘최근 3년의 활동 증빙’이 임신-출산-육아를 통과한 작가들에게 적절한 기준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출산-육아를 하고 있는 경력단절 여성을 포함하여 지원 조건에서부터 벽에 부딪히는 배제의 그룹을 공공의 영역이 어떻게 삭제하지 않고 포섭할 수 있을까요?

(경희) 예술지원정책의 옛 모습을 떠올려보면, 창작자의 전시 하나를 지원해주는 데서 출발하지 않았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 수 있다. 이제는 대상도 창작자 외에 기획자 등으로 넓혀졌고, 레지던시, 예술인파견사업, 연구지원, 청년예술 등 그 대상도 구분도 세밀화되어 보다 다양한 기회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임출육’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커뮤니티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본격적인 작업에 뛰어들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준비단계가 되어줄 정보 공유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곳에서 정서적인 스킨십과 정보수집을 경험하고 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지 않을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더더욱 절감한다. 그리고 그런 커뮤니티에서 모인 이들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한계는 무엇인지, 역으로 어떤 일을 새롭게 만들어 볼 수 있는지를 설문해 데이터들을 모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규모는 작겠지만 비슷한 성격의 시도를 본 프로그램 말미에 참여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사진: 현준영)

  • 공유
  • Tweet

다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