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Makes Zero
vol.2

자기기록: 듣기와 쓰기 / 김지연 (기고: 희음)

아침 식사를 위해 가족이 일어나고, 부엌을 살피는 소리가 들린다.
요리에 필요한 다시다가 없자, 동생은 오빠에게 다시다를 사달라고 요청한다.
달그락거리며 프라이팬이 올라가고 이후 가스 불이 켜진다.
먹기 좋게 손질된 호박이 기름을 두른 팬 위로 쏟아지자 ‘치-익'거리는 선명한 소리로 가득하다.
조용히 호박을 볶는 아버지 옆에서 딸은 소소한 대화를 걸어본다.

‘자기기록: 듣기와 쓰기’ 워크숍에 참여한 김구정님이 녹음한 장면의 일부이다. 중년의 딸이 어느덧 그녀의 나이만큼 시간을 쌓아간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요리하는 모습은 그저 소리만으로도 충분한 상상을 일으킨다. 사소할 것 같은 누군가의 일상의 조각이 타인에게 다가오면서 조각들은 새로운 소리로 변환되어 또 다른 확장을 일으킨다.

김지연 작가에게 청각은 자기기록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당연하다 여겨진 소리가 고유의 기록으로 남겨지는 순간, 그것은 그저 그런 반복의 일부가 아닌, 하나의 작은 역사이자 삶의 단락이 된다. 어쩌면 김지연 작가가 말하는 ‘소리 조각’이 스스로를 인지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좀 더 세밀한 작가 노트와 인터뷰를 통해 자기기록으로서의 소리에 대해 들여다보자.

“자기기록은 자기를 감각하고, 그것은 어떻게 기록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듣기와 쓰기라는 행위를 방법론으로 차용합니다. 누군가는 진짜 자기를 오로지 혼자 있는 때와 장소에서 발견하고자 하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 자기 모습을 자세히 듣고자 합니다. 단일한 역할과 정체성으로 자기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서, 자기가 고른 한 조각이 자기의 어떤 모습을 담고 있을지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참여자들에게 자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자기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새롭게 발견되고, 또 변화하는 무언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기하게도 각자가 선택한 한 조각 일상의 소리녹음을 참여자들과 함께 한명 한명 온전히 집중해서 듣게 될 때 그 소리는 여러 들림이 발생하는 무한히 열린 소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녹음된 소리를 들으며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주변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을 마주하고 익숙해진 것들을 새삼스럽게 거리두고 보게 되는 경험을 합니다.

내가 일상에서 들은 것의 기록과 내가 행위 했던 시공간의 기록이 일종의 자기기록이라면, 이 소리들이 타인에게 들려지면서 점점 더 커지고, 또 중요한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일상 한 조각을 나누어 들으면서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경험과 기억이 연결되는 순간이 생기기도 합니다. 스트리밍은 발신하고 청취하는 여러 곳의 시간을 직접적으로 연결합니다. 이때 우리가 공유하게 되는 것은 발신하는 소리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시간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 됩니다.

이번 워크숍에서 쓰기는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도록 돕는 일종의 쓰기 보조 행위로 제시됩니다. 참여자들에 의해 쓰인 것들 속에는 들으면서 떠오른 즉각적인 반응들, 질문들, 생각의 흐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일상의 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들으며 불다 멈추다 불다 멈추다를 따라가는 휘파람처럼 듣기 쓰기는 일상을 스케치하고 메모하고 직관을 담은 시로 옮겨놓습니다.”


김지연 작가와의 인터뷰 (2020.11.13)

제로의 예술 김솜이 (이하 솜이): 오늘 두 번째 워크숍에서 참가자분들의 녹음 기록을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일상 속 다양한 소리를 들어볼 수 있어 참 흥미로웠는데, 직접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지연: 워크숍에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제가 집중하는 소리의 종류는 사람의 말소리는 아니었어요. 올해 개인적인 변화도 있고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면서 그 사람의 목소리, 내지는 ‘사람을 듣는다’라는 것을 연습하는 느낌이었어요. 늘 하던 작업과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해요.

솜이: 워크숍의 제목을 살펴보면 ‘자기기록: 듣기와 쓰기’ 입니다. 듣는 행위와 쓴다는 행위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지연: 갑작스럽게 느낀 것은 아니고 작년부터 쓰기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어요. 문학적인 글이 아니더라도, 쓴다는 행위가 나에게 주는 어떤 작용을 느꼈어요. 쓴다는 것은 듣는 것과도 상관이 있는데, 소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설명하듯이 쓰고는 했어요. 듣기의 경험과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느낌이에요. 일상의 행위로 산책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그때 (사진) 기록을 참 많이 해요. 작업을 위한 것이 아닌 제가 보고 느낀 것에 대한 기록이자 관찰이에요. 어떤 의미로는 그 의식을 강화하는 행위로서의 찍기인 거 같아요. 그 행위가 어떤 순간을 인지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그러다 시각 중심이 아닌 소리 중심의, 듣기 중심의 산책은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노트를 들고 쓰면서 걷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듣는 것과 쓰는 것의 연결성에 대한 질문이 생겼어요. 올 하반기에 제로의 예술을 포함해서 몇 번의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 중 첫 번째 워크숍은 예술로 파견사업을 통해 만난 아디라는 아시아 분쟁지역의 인권과 지원 활동을 수행하는 단체의 활동가분들과 함께했던 워크숍이었어요. 그 워크숍 제목이 ‘리스닝 콜렉티브: 듣기를 증폭하는 쓰기’였는데요, 작은 목소리나 잘 들리지 않는 소리를 어떻게 크게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함께 듣기, 그리고 함께 쓰기가 어떤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지었어요. 들을 땐 그저 들을 뿐이에요. 생각보다 집중하기 어렵죠. 마치 명상을 할 때 코끝의 호흡을 집중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을 떠올리곤 하는 것과 같아요. 게다가 듣는 동안은 말을 하지 않아 이 사람이 잘 듣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쓰기를 하는 것이 계속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솜이: 이번 워크숍에서는 여러 사람이 각자의 녹음을 기록하고 함께 공유합니다. 이 방식이 워크숍에서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데, 이렇게 진행하시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지연: 이전엔 직접적인 이야기가 담긴 사람의 목소리에 거부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내게 향하는 듣기가 특정 부분으로 쏠린 것은 아닐까. 그런 걸 조금 느꼈던 거 같아요. 사람이 참 큰 존재인데 너무 배경에만 집중했던 건 아닐까. 이제 사람을 좀 들여다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를 쓸 때, 그것이 기록으로서 의미를 갖거나 가치가 있으려면 누군가에게 읽혀야 하잖아요. 그럴 때 ‘쌍’에 대해 더 인식하게 되는 거 같아요. 혼자 듣는 것과 달리, 여러 사람과 함께 듣게 되면 더 다양한 방식으로 파생이 되죠. 예를 들면 하나의 이야기를 열 사람이 들었을 때, 그것이 열 개의 같은 이야기가 아닌 열 가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로 퍼지고 확장이 되죠. 다양한 듣기는 또 다른 힘이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의미로 함께 듣는다는 것이 재미있는 게 아닐까요?

솜이: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시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지연: 올해 진행하는 워크숍에서는 일상의 녹음과 그것을 함께 듣는 것이 중점이 되었어요. 2분 동안 짧게 걷는 걸 녹음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죠. 그런 행위가 대단해 보이진 않을 수 있어요. 근데 그 녹음을 여러 사람과 함께 듣고 인식할 때 참 특별해진다고 느끼게 된 순간이 많아요. 이번에도 (워크숍) 참여자분들의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많이 놀랐거든요. 그 하나하나가 다 너무 특별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여자분들의 녹음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떤 분은 본인의 행위를 들려주려 하기보다 그분이 듣는 것을 함께 듣게 만들고, 다른 분은 아예 본인이 그 속에 들어가서 계속 행위하고 대화하며 소리의 주체가 되세요. 같은 과제를 드리더라도 그걸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참여자분마다 다르고, 그러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소리들과 생각들이 나타나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던 거 같아요.

이번 워크숍에는 스트리밍도 진행하는데, 그건 어떤 다른 경험일까 생각을 해보게 돼요. 스트리밍은 시간 경험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는 거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소리에 대한 퀄리티에 집중한다기보다는 그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만드는 시간 감각, 시간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솜이: 최근 시도하고자 하는 소리가 있으시다면?

지연: 듣는다는 게 어떤 소리의 진동을 감각하는 것도 있지만, 공감의 영역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잖아요. 특히 사람을 듣는 것은 공감을 걷어낸 채 그저 말소리만으로 남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더 나아가서는 소리를 통한 공감의 대상이 꼭 사람만이 아닌, 어떤 현상이나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분석하려 해도 저 역시 사람인지라, 조금 뻔한 표현일 수 있지만(웃음) 올해는 분석적인 듣기보다는 공감하는 듣기를 시도하고 싶어요.


김지연은 바깥에서 소리를 녹음하며 경험한 순간들, 말없이 허밍으로 노래를 짓는 순간들이 좋아서 소리와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 뒷산을 산책하는 시간을 하루 중 가장 아끼며, 산책이 남기는 조각들을 모아보려 애쓰는 과정이 지금은 일기나 시 같은 것을 쓰는 일이 되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어떤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타인을 통해 알았다. 11(십일)이라는 이름으로 몇장의 전자음악, 피아노 연주 음반을 냈고, 김지연으로 설치, 영화음악 작업을 한다. 이강일 작가와 ‘웨더리포트’라는 듀오로 틈틈이 제주의 날씨를 스트리밍 했고, 2018년부터는 제주 거로마을의 소리환경을 상시 스트리밍하고 있다. 여러 매체로 작업을 하더라도 쓰는 일이라는 점에서 통한다고 생각한다. https://teum11.github.io/JiyeonKim-11/post/news.html


‘각자’의 소리를 ‘함께’ 듣는다는 것: 맨 앞자리에 서는 사랑

리뷰: 희음

‘자기기록: 듣기와 쓰기’ 2회차 워크숍이 있는 날, 역에서 내린 나는 주최측에서 미리 보내준 사려 깊은 약도를 휴대폰 화면에 띄운 채 바삐 걸었다. 목적지를 향한 마지막 관문인 주황색 계단을 다 오르니 워크숍 장소인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이 금세 가시권에 들었다. 12인용의 직사각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7명의 참여자와 워크숍 리더, 그리고 1명의 참관인이 둘러앉았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공간은 꽉 들어찬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참여자들이 지닌 설렘의 열기 때문인 듯했다. 충주 사시는 참여자 한 분은 충주 사과를 한아름 가져와 나누었다.

워크숍 리더는 사운드 아티스트인 김지연이 맡았다. 그는 녹음과 스트리밍 작업을 통해 목소리 없고 몸 없는 것들의 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데 힘쓰며, 그 소리가 정치와 예술로 옮겨가는 지점에 오래 머물렀다. 워크숍을 실행하기에 앞서 그는 참여자의 이름이 기입된 손바닥 만한 메모지와 A4 크기의 갱지를 참여자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1회차 워크숍에서는 각자의 일상 시간표를 그리고 그중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시간대를 표시하도록 했는데, 그 시간대의 소리를 녹음해오는 것이 2회차 워크숍의 사전 과제였다. 김지연은 각 참여자 자신이 녹음해온 소리에 대한 느낌은 메모지에, 다른 이들이 따온 소리에 대한 감상은 갱지에 기록하도록 했다. 메모지와 갱지는 ‘각자’의 소리기록을 ‘함께’ 듣기 위한 준비물이었던 셈이다. 종이와 연필이 앞에 있다는 그 사실이 분명 우리를 진지하게 만들었지만, 누가 무엇을 담았을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감 역시 자세를 다잡도록 했다.

작가 이슬아가 글쓰기를 “부지런한 사랑”이라 한 바 있지만, 나는 이 장면을 목격한 뒤, 실은 글쓰기에 앞서 누군가를 듣는 일 안에 그 사랑이 더 깊이, 더 먼저 들어차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글을 쓰려면 관찰하는 일, 즉 귀 기울이는 일이 앞서야만 한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목적 없이 귀 기울임만으로도 우리는 깨어난다. 진실 앞에 선다. 귀 기울임 자체가 사랑의 행위인 것이다. 말하자면 듣기는 맨 앞자리에 서는 사랑이다. 그날의 워크숍 역시 쓰기 위한 듣기가 아니라 듣기 위한 쓰기에 가까웠다. 맨 앞자리에 서는 사랑인 듣기를 지지하는 자리에 두 번째 사랑인 글쓰기가 놓이는 것. 쓰기에 기대어 듣기의 길을 더 정확하게 더듬으며 나아가는 것.


나의 바깥, 타자로부터 새롭게 발견되기

첫 번째 참여자의 소리기록이 재생되자, 예행연습이라도 한 듯 모두가 동시에 숨을 죽였다. 눈을 감는 이도 있었고 먼 공중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그 모두가 귀를 여는 데 보탬이 되는 포즈였다. 첫 참여자의 소리기록에는 휘파람 소리가 8할쯤 담겨 있었다. 재생이 끝난 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도 배경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참여자는 “휘파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뱉고 있는 듯했다”고도 말했다.

어떤 참여자의 소리기록에는, 동일한 소리가 내내 이어지다가 조금씩 천천히 높아지면서 한순간 크게 들끓었다 하강하는 흐름이 담겨 있었다. 소리는 길었고 힘이 셌다. 참여자들의 얼굴에 잠시 동안 불안이 어리기도 했지만, 누구도 그 소리로부터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재생이 끝나자 참여자의 설명이 덧붙었다. “찻물을 끓이는 아침 시간은 제가 하루 중 가장 소중히 여기는 때예요. 발효차의 알맞은 발효를 위해 모든 소리와 행위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죠. 온전히 나를 위하고 나를 사유하는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소리 안에 기록된 나를 오늘 듣다 보니 그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나’에 대한 생각은 나 이외의 존재나 사건과 늘 함께 온다는 걸 알았죠.” 그의 말은 어떤 소리를 함께 듣는 일이 갖는 힘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또 그것은 나의 바깥, 즉 타자에 의해 새롭게 발견되는 나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그에게 끄덕이며 참여자들은 릴레이를 하듯 말을 이어갔다. “물이 말하는 소리, 물의 노래로 들렸어요.” “소리로만 이뤄진 영화 같았어요.” “소리도 회화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소리를 담아온 참여자의 얼굴에 옅고 긴 웃음이 번졌다.


소리에 든 저마다의 이야기를 함께 발견해나가기

또 다른 참여자의 소리기록은 새벽 어스름의 시간에 채집된 것이었다. 온갖 동물들 소리가 다 들어 있었다. 아침을 여는 소리, 자신들의 깨어남과 허기짐을 알리는 소리, 또 간혹 차량이 지나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참여자는 소리를 내는 모든 것들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고 했다. 누군가 그의 말에 추임새를 넣듯, 고요할 줄 알았던 시골 풍경이 새롭게 재조명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비인간 동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는 걸 이제야 자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참여자는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에 와서 함께 들으니 녹음할 때는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혼자 들을 때는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린다고.

귀갓길에 마주하게 되는 온갖 소리를 담아온 참여자도 있었다. 일터 인근인 홍대입구역 언저리에서부터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로 걸어 들어가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그것을 듣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발걸음 속에도 이야기가 있구나 싶었어요.” 또 누군가는 이런 소회를 덧붙였다. “고요한 가운데 낙엽을 밟는 발소리가 들렸을 때에야 긴장을 내려놓았어요. 비로소 자기 발을 바라볼 수 있는 안도의 시간에 도달했구나 하고 생각됐기 때문이에요.” 그 이야기를 들은 참여자는 자신의 발을 잠시 내려다보는 듯도 했고, 발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려는 것처럼 지그시 눈을 감기도 했다.

딸과 동행한, 반려견과의 산책 시간을 채집해온 이도 있었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나직하게 하모니카를 부는 한때를 담아온 이도 있었다. 해외에 오래 거주하던 한 참여자는 최근 귀국해 아버지, 오빠와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꾸렸는데, 그의 소리기록에는 호박을 써는 아버지와 운동화를 빠는 오빠의 분주한 움직임이 담겨 있었다. 이들의 소리기록이 재생된 뒤에도 어김없이, 그 밖의 높고 낮은 목소리가 그것을 어루만지듯 섞여들었다.


소리를 매개로 보다 넓은 원을 그리는 일

참여자들은 자신에게서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나온 자기 일상의 소리기록을 제 것이 아닌 양 들었으며, 오히려 그 소리기록에 대한 다른 참여자들의 말을 마치 자신을 먹여 살리는 끼니처럼 달게 삼켰다. 다른 이의 소리기록에 자기 경험에 대한 고백이 부드럽게 얹혔고, 소리기록의 당사자는 그것을 불편해하는 일 없이 받아 안거나, 한층 더 부드러운 답가를 보내기도 했다. 그 누구도 누군가의 첨언에 대해 방어적이 되거나 경직되는 일 없이 부드럽게 서로의 말 속으로 스미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도 제 소리기록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각자의 소리를 매개로 서로의 이야기에 기대어, 자기 자신이라는 원을 더 크게 넓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소리기록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일은, 녹음이나 기록의 주체가 그 소리의 주인이 아닌 것을 아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었다. 또 이는 우리의 일상이란 제각각 완벽히 분리된 것이 아니며, 그 일상은 우리와 가깝거나 먼 타자들의 생각과 행위와 삶에 영향받거나 그에 의해 지탱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서로 조금씩은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도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앎은 이들에게 깊이 스민, 체화된 지식 같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들, 혹은 우리가 여성으로 살아온 시간과 세월이 그런 품과 여유를 건네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중년 여성 참여자들의 유연함과 사려 깊음이 만들어낸 부드러운 원환이, 이 워크숍이 더욱 온전히 열린 장이 되도록 하는 데 든든한 토대가 되어주었다고 믿는다.


희음은 ‘시 쓰고 공부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이것이 요즘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즐겨 쓰는 문장이다. 그는 이 중에서 ‘움직이는 사람’에 가장 크게 방점을 찍고 싶어 한다. 문학이든 공부든 그것이 삶과 사회를 성찰하면서 더 나은 방향을 만들어갈 때에라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 방향을 따라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최근에는 첫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를 펴냈고, 앤솔러지 시집 <구두를 신고 불을 지폈다>를 출간했다. 일상비평 웹진 ‘쪽’(zzok.co.kr)을 공동으로 발행하며 여성 및 소수자와 연관된 비평에세이를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또 그는 ‘지여시:지금-여기의 시 쓰기’ 모임을 2년간 이어가면서 함께 쓴다는 것의 힘과 즐거움을 함께 알아가는 중이다.

(정리: 제로의 예술 김솜이, 사진: 현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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