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공공성: 평평함 속에 위장당한 기울어짐
[제로의 예술]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여전히 극성인 2020년에 시작되어 마무리를 예측할 수 없는 2021년에 종료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우리가 준비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예상처럼 진행될지 알 수 없고 자의로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공공성과 공공예술에 반문을 하는 우리의 프로젝트가 과연 실행 가능한가 라는 위기감도 함께 맞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1
이런 와중에도 [제로의 예술]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무시할 수 없는 몇가지 판데믹과 공공예술의 관계점을 기록해두고 워크숍, 강의, 프로그램을 열고자 합니다.
애초에 판데믹을 떠나 공공예술을 바라보았을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공예술이란 과연 벽화마을, 건물이나 건축 처럼2 불특정다수의 최대한의 사람들이 향유하는 것만이 맞는가, 라는 생각입니다. 국내 유일의 공공예술 축제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3 또한 “일상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 자체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불특정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공예술의 대상이 특정 불가능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시민이라는 그룹을 대상으로 함으로서 놓치는 지점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모두를 위한다고 말하면서 모두에 속할 수 없는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입니다. 모두라는 말이 다층적으로 사방팔방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그룹이 아닌, ‘모두’라고 하는 하나의 평평한 그룹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채 그것이 최대다수를 위한 것이므로 공공일 것이라고 상정합니다. 설사 한 명 한 명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하는 공공예술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모두의 마음을 울릴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줄어들게 되거나 혹은 감정의 단순화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평평한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예술이 아닌, 특정한 대상의 시민을 위한 혹은 구체적인 관심을 요구하는 공공예술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그 평평함 속에 위장당한 기울어짐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기울어진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공공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무언가를 ‘만들기’하여 결과물을 보여주는 일은 필연적으로 목표에 상응하지 않아 우리는 ‘제로’의 예술이 되었습니다. 일회성 만들기를 하지 않는 제로 뿐만 아니라 차이의 제로 (다수와 소수 사이에서 발견되는 간극에 주목하면서, 세대, 젠더, 지역, 기술 교육 등의 틈을 공공의 시점으로 바라보고, 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찾음), 과정의 제로 (블랙박스화된 재료의 상품화 과정,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작품 속에서 비거니즘, 동물권, 생태 등을 읽고 사라진 존재들을 찾음), 제로의 거리 (광주와 서울,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열리는 시도를 통해, 지역 간의 물리적 거리, 유형적으로 발현되는 위계적 공공성을 전복시킬 수 있는 실험, 실천을 제안), 이 세 가지의 제로를 주제로 삼아 다양한 제로들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60대 이상의 시니어 여성들과 사운드 아트, 움직임 워크숍을 하며 감각을 일깨우고,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창작자와 작업, 용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역 퀴어의 삶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10대들과 발전하는 기술, 발전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동물권, 기후위기, 환경문제를 건축, 미술재료학, 박물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스터디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판데믹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판데믹은 다수가 한꺼번에 모이는 자리를 피하고, 타인과 직접적인 접촉을 불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맞이하게 했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이어집니다. [제로의 예술]을 포함 많은 문화예술행사가 취소될 위기를 맞이하거나 비대면으로 바뀌었지만, 동시에 직접 가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행사에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기존의 극장, 미술관을 다시 바라 볼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올드 노말의 사라짐과 [제로의 예술]이 소수를 위한 공공성을 논하는 것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제로의 예술]이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소수의 기울임을 바라볼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극장, 큰 세미나실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 문제를 꺼내는 소박한 공간이 필요했고, 이러한 소수의 모임은 어쩌면 판데믹 시대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공공예술이 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했기에, 판데믹이 도래한 지금 그 존재가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소수공공성과 기울임을 이야기 하기 위해 그 존재가치에 반문을 던진 우리의 애초의 목적과 판데믹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우연하게도, 그러나 피치못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만나는 순간 [제로의 예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소수공공성이란 소수가 이야기하고 입을 닫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제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제로의 예술]의 목적입니다. 2021년 8월 [제로의 예술 페스티벌]이 어떤 형태로든 진행됩니다. 2020년 10월부터 2021년 5월까지 진행되는 기울임을 바라보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의 여정을 지나, 2021년 8월, [제로의 예술 페스티벌]에서 평평한 모두, 최대 다수, 불특정 다수, 그러나 기울임에 관심이 있을 여러분을 만나 그 평평함과 기울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금 시작합니다.
글. 강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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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대면의 일상화와 변화하는 감각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0275.html 언택트 시대에 콘택트형 문화예술계의 방향은?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69 소외된 이들 문화 생활 챙겨주는 ‘문화돌봄사’ 생긴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366791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은 무엇을 준비할까?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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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미술 프로젝트 http://www.maeulmisul.org/ 서둘러 추진하는 공공미술 사업…실효성 우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38303 공공미술포털 https://www.publicart.or.kr 서울 공공미술 프로젝트 http://www.covid-19-seoul-publicart-projec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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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공공예술 프로젝트 http://apap.or.kr/ ↩︎